얼마 전 거울을 보다가 눈가에 제법 깊게 파인 주름을 발견했습니다. 아 이게 세월의 흔적인가 하는 생각에 잠시 지난 세월을 회상해 봅니다.새치머리는 진작부터 몇 뿌리씩 올라왔지만, 눈가 주름은 유독 마음을 쿵 떨어뜨리더군요. 예전에는 피부과 시술이나 안티에이징 화장품 광고를 볼 때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눈길이 절로 가는 걸 보며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문득 최근에 만난 동창과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만나자마자 "나이 드는 게 너무 무섭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직장에서의 입지도 아슬아슬해지며, 무엇보다 얼굴의 생기가 사라져 가는 게 괴롭다고 했습니다.그 친구의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지난주 주말, 집안 대청소를 하다가 장롱 구석에서 먼지가 뽀얗게 쌓인 CD 플레이어와 대학 시절 모았던 음악 CD 수십 장을 발견했습니다.반가운 마음에 먼지를 털어내고 CD를 넣으려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정작 그 음악들을 들으려고 손을 뻗은 건 CD 플레이어가 아니라 제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었기 때문입니다. 음원 스트리밍 앱을 열어 검색창에 노래 제목을 치니 1초도 안 돼서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그 순간 문득 묘한 쓸쓸함이 밀려왔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좋아하는 가수 앨범 한 장을 사려고 용돈을 아끼고, 음반 매장까지 먼 길을 찾아가 손에 쥐었을 때 그 묵직한 설렘이 있었습니다. 앨범 재킷을 열어 가사집을 넘겨보던 그 감각 말입니다.하지만 지금의 저는 매달 만 원 남짓의 구독료를 내고 세상 모든 음..
열심히 법을 지키고 남을 배려하며 착하게 사는데, 정작 세상은 편법을 쓰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더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이용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남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한 사람이 번듯하게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없는 허탈감과 억울함이 밀려오곤 합니다."착하게 살면 결국 나만 손해 보는 게 아닐까?", "현대 사회에서는 이기적이고 악하게 살아야만 잘 살고 행복해지는 걸까?"라는 회의감이 드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반응입니다.정말 세상은 양심을 버린 사람들에게 더 관대하고 행복을 선사하는 곳일까요?남의 눈을 속여 얻은 성공이라는 포장지눈앞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기만하거나 편법을 쓰는 사람들은 당장 더 많은 부나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2년에 한번 씩 받는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가 본관 로비 한구석에 마련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 부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드신 어르신 몇 분이 진지한 표정으로 상담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고,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몇 년 전 오랜 병환 끝에 돌아가신 친척 어르신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습니다.당시 산소호흡기와 각종 줄을 꽂은 채 의식 없이 누워 계시던 모습을 보며, 가족들은 "이것이 과연 어르신이 원하셨던 삶의 마무리일까?"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겨진 가족들에게 찾아오는 정서적 고통과 경제적 부담 역시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내가 당사자라면 이 문제에 대해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볼 문제였습니다.삶의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 즉 존엄사에..
며칠 전 인터넷 쇼핑 앱을 켜고 겨울 옷을 둘러보다가 문득 소름이 돋는 경험을 했습니다.내가 무엇을 검색하기도 전에 화면 가장 상단에 내가 평소 즐겨 입는 스타일과 색상의 옷들이 완벽하게 나열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참 편하고 똑똑하다"며 감탄했지만, 결제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이 옷은 정말 내가 원해서 선택한 걸까, 아니면 인공지능이 나에게 사라고 지정해 준 걸까?'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미 일상의 아주 작은 선택부터 중요한 결정까지 모두 기계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배달 앱의 인기 순위를 보고 결정하고, 주말에 무슨 영화를 볼지도 OTT 서비스가 추천해 주는 작품 중에서 고릅니다. 심지어 차를 운전할 때도 평소 다니던 익..
운전을 하다 보면 차선 변경을 할 때 양보해 준 차에 고맙다는 비상등 점멸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얌체처럼 끼어드는 운전자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또 직장이나 대인관계에서 정말 믿었던 사람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는 모습을 보며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그럴 때마다 머릿속에는 한 가지 서글픈 의문이 떠오릅니다. "인간은 과연 본래 선한 존재일까, 아니면 이기적인 욕망만을 품은 존재일까?"우리는 어려서부터 "사람은 기본적으로 착하다"는 말을 듣고 자랍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목격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이 따뜻한 믿음을 너무나 자주 배신합니다. 타인의 이기심에 상처받지 않고 내 마음의 중심을 잡으려면,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맹자의 성선설: 마음속 도덕적 ..
얼마 전 휴대폰 갤러리를 정리하다가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지인과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문득 그 친구의 SNS 계정이 떠올라 찾아가 보니, 마지막으로 남겨진 글과 사진들 아래에 아직도 그리움을 전하는 사람들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스마트폰 하나에 개인의 모든 사생활과 기록이 담기는 요즘, 우리는 누구나 디지털 세상 속에 수많은 흔적을 남기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그가 남긴 수많은 이메일, 메신저 대화, 블로그 글, 그리고 SNS 계정은 어떻게 처리되어야 할까요?남겨진 가족에게는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자 기억의 조각일 수 있지만, 동시에 고인만이 간직하고 싶었던 비밀이나 프라이버시일 수도 있습니다. 디지털 유품 상속 문제는 단순한 기술이나 법의 ..
살면서 큰 고민이 생겼을 때, 주변 지인이나 인생 경험이 많은 사람들을 찾아가 상담을 받아본 적 있으실 겁니다.그런데 이야기를 다 나누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신기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아주 똑똑하고 현실적인 해결 방법을 가르쳐 주었는데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섭섭하거나 찜찜했던 기억 말입니다. 반대로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해준 사람을 만나면 마음에 깊은 안도감이 들곤 합니다.우리는 흔히 내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하고 싶어서 사람들에게 물어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어쩌면 내 마음속에 이미 답을 내려놓고, 그 생각이 맞다고 누군가가 편을 들어주길 바란던 것은 아닐까요?이미 답을 정해두고 물어보는 마음사람이 고민을 털어놓을 때 마음속에서는 두 가지 생각이 서로 싸우게..
몇 년 전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며칠 밤을 새우며 준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내 모든 에너지와 정성을 쏟아부었기에 당연히 좋은 결과가 따라올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치 못한 외부 변수가 터지면서 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습니다.그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밀려왔던 허탈감과 자책감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내가 어디서 뭘 놓친 걸까?", "내가 더 노력했어야 했나?"라며 모든 화살을 나 자신에게 돌렸습니다.우리는 어릴 때부터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열심히 하면 뭐든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진리처럼 들으며 자랍니다. 물론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삶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모든 결과를 오롯이 '개인의 노력' 하나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주변 지인이나 뉴스를 통해 누군가가 사업에 실패했거나, 크게 손해를 보았거나, 혹은 힘든 일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왠지 모를 안도감과 결코 나쁘지 않은 마음이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준 적이 있지 않나요.겉으로는 같이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나도 모르게 "아, 나는 그나마 다행이다"라며 작게 안도했던 적이 있으신가요? 그리고 이내 '남의 아픔을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다니, 내가 이렇게 사악하고 나쁜 사람이었나?' 하고 스스로에게 깊은 죄책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타인의 불행을 보며 느끼는 약간의 위안이나 안도감, 과연 우리가 도덕적으로 삐뚤어지고 사악해서 생기는 마음일까요?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이 묘한 감정의 정체와, 마음의 죄책감을 줄이는 지혜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