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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에 한번 씩 받는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가 본관 로비 한구석에 마련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 부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드신 어르신 몇 분이 진지한 표정으로 상담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고,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몇 년 전 오랜 병환 끝에 돌아가신 친척 어르신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산소호흡기와 각종 줄을 꽂은 채 의식 없이 누워 계시던 모습을 보며, 가족들은 "이것이 과연 어르신이 원하셨던 삶의 마무리일까?"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겨진 가족들에게 찾아오는 정서적 고통과 경제적 부담 역시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내가 당사자라면 이 문제에 대해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볼 문제였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 즉 존엄사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철학 책에만 존재하는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 냉정하게 마주해야 할 현실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고 싶어 하는 이유
보건복지부 관련 자료나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성인 10명 중 8명 이상이 존엄사나 연명의료 중단에 찬성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극심한 신체적 고통을 견디며 의미 없이 생명을 연장하기보다,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며 삶을 정돈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저서 《자유론》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개인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 절대적인 주권자라고 말했습니다. 내 삶의 주인으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존엄성을 지키겠다는 생각은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당연한 권리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최근에는 건강할 때 미리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문서로 남겨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분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전국 보건소나 지정 등록기관을 방문하면 신분증 확인 후 비교적 간단하게 등록할 수 있으며, 이는 먼 훗날 본인의 의사를 입증하는 중요한 장치가 됩니다.
자율적 선택인가, 아니면 사회적 등 떠밀림인가
하지만 이 문제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마음이 편치 않은 단면도 존재합니다. 연명의료 중단을 고민하는 분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순수하게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가족들에게 간병비나 의료비 짐을 얹어주기 싫어서"라는 이유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적절한 간병 지원이나 간병비 부담을 줄여주는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한 상태에서 존엄사가 이루어진다면, 과연 그것을 온전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복지 체계가 충분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자칫 존엄사가 노인이나 장기 환자들에게 "이제 그만 가족을 위해 떠나라"라고 은연중에 압박하는 '사회적 방임'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지만, 실상은 경제적·사회적 조건에 내몰려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존엄을 위한 사회적 조건과 우리의 자세
결국 존엄사는 단순하게 "죽을 권리를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이분법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자기 결정권이 발휘되려면, 개인이 경제적 이유나 가족의 눈치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지 않도록 받쳐주는 복지 시스템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시설이 확대되고, 장기 간병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든든해질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롯이 나 자신의 삶을 정돈하는 진짜 '자율적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거나 존엄사에 대해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결코 삶을 포기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살아온 삶을 어떤 모습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가장 적극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오늘 저녁,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존엄한 삶의 마무리에 대해 가벼운 대화를 나누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끝까지 인간다운 품위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참된 삶의 완성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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