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뉴스나 SNS를 보다 보면 유명인이나 대기업이 잘못을 저지르고 올려놓은 글을 자주 보게 됩니다. 형식 적이고 영혼 없는 사과의 글들을 짜인 각본대로 읽어 내려가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그런데 긴 글을 읽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 화가 나고 배신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분명 글자로는 "죄송합니다", "반성합니다"라고 적혀 있는데도, 읽는 사람의 마음에는 왜 전혀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는 걸까요?잘못을 저질렀을 때 전하는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마음을 다독이는 진짜 용서의 시작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관계를 완전히 끝내는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정성 들어 쓴 글을 보고도 화를 내는 이유와, 진짜 마음을 전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사람들의 마음을 더 분노하게 만..
친구나 직장 동료와 크게 다툰 뒤, 상대방으로부터 "내가 다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실 겁니다. 분명 상대는 토 달지 않고 사과했고 사건은 일단락된 것 같은데, 이상하게 내 마음은 여전히 묵직하고 서운함이 가라앉지 않았던 경험이 있으신가요?사과하는 쪽에서는 "말해 준 대로 사과까지 했는데 도대체 왜 아직도 화를 내냐"며 답답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버튼 하나 누른다고 즉시 리셋되는 기계가 아닙니다.사과라는 정답을 제출받았는데도 왜 우리는 곧바로 상대를 용서하기 어려울까요?말은 단 1초지만, 다친 마음이 회복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사과와 용서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문제를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가해자의 시간'과 상처를 추스르는 '피해자의 시간'..
평소에는 둘도 없이 우애가 깊던 형제들이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신 뒤 남겨진 재산 문제 앞에서 서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법정 다툼까지 벌이는 모습을 주변이나 뉴스에서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평생을 함께 자라온 가족이 왜 부모님의 유산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는 이토록 차갑게 등 돌리게 되는 걸까요? 단순히 사람이 돈에 눈이 멀어 탐욕스러워졌기 때문일까요?가족 간의 재산 싸움 뒤에 숨겨진 인간의 서운한 마음과, 다쳐버린 마음을 보듬고 우애를 지키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돈 액수보다 무서운 '서운함과 인정의 욕구'겉으로 볼 때는 통장 속 상속 금액을 얼마씩 나누느냐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 '누가 부모님에게 더 사랑받았는가'에 대한 오랜 서운함이 폭발하는 경우가 훨씬 ..
연세가 드시고 건강이 부쩍 악화된 부모님을 뵈며, 언젠가 한번은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요양원'입니다. 병원에서 "이제는 전문적인 간병이나 시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혹은 집에서 홀로 부모님을 돌보다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상담이라도 받아보려 시설 문을 두드리고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더없이 무겁고 서글퍼집니다.차마 부모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마치 내가 부모님을 버리거나 버거운 짐처럼 치워버린 것 같은 깊은 죄책감이 밀려오기 때문입니다.왜 우리는 부모님의 요양원 입소를 고민하는 순간 이토록 심한 배신감과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요?그것은 바로 우리가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배워온 '효도'라는 마음의 틀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내..
평생을 바쳐 일해온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거나, 나이가 들면서 언젠가 찾아올 퇴사 날짜를 손꼽아보게 될 때 마음 한구석에는 모호한 불안함과 섭섭함이 피어오릅니다.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하던 루틴, 명함에 찍혀 있던 내 이름과 직함, 그리고 매달 정해진 날짜에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진다는 사실은 단순히 '일을 그만둔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마치 내 삶의 큰 한 축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허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우리는 왜 일을 내려놓는 순간 그토록 깊은 불안감을 느끼는 걸까요? 정년이라는 인생의 큰 마침표 앞에서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고 내 삶의 진짜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내 존재 가치를 직함과 동일시했던 시간들정년퇴직을 맞이할 때 가장 큰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이..
특별히 큰 사고나 나쁜 일이 터진 것도 아닌데, 문득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조급해질 때가 있습니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 "내일 일은 잘 잘 풀릴까?",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하는 막연한 걱정이 꼬리를 물며 밤잠을 설치기도 합니다.우리는 불안한 마음이 찾아올 때마다 그 감정을 마치 없애야 할 나쁜 병처럼 취급하곤 합니다. "걱정하지 마", "마음 편하게 먹어"라며 억지로 불안을 눌러보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더욱 바짝 오그라들기 마련입니다.불안은 왜 우리를 끊임없이 찾아오는 걸까요? 그리고 이 불청객 같은 마음을 어떻게 보듬어야 편안해질 수 있을까요?불안은 나를 지키기 위한 내 마음의 작은 경보음사실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스스로를 괴롭히려고 생겨나는 게 아닙니다. 불안은 위험한 세상 속..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도 인사 대신 휴대폰 화면만 뚫어져라 바라볼 때, 꽉 막힌 도로에서 차선 변경을 하려는 옆 차를 본체만체하며 바짝 붙어 운전할 때가 있습니다.상대방이 나쁜 마음을 품어서라기보다, 다들 자기 하루를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여유가 없어 주변을 둘러볼 마음의 공간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이기적이야", "세상이 참 각박해졌다"라는 서글픈 탄식이 들려옵니다.우리는 정말 본래부터 나밖에 모르는 사악하고 이기적인 사람일까요? 각박한 세상 속에서 타인과의 온기를 잃지 않고 내 마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내 안전이 위협받는 세상에서 생겨난 차가운 방어막사람들이 점점 자신만의 세계로 숨어들고 타인에게 냉정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역설..
주말에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거나 좋아하는 카페에 다녀왔는데도, 월요일 아침이면 몸과 마음이 여전히 묵직하고 피곤했던 적이 있으실 겁니다. 분명 육체적으로는 충분히 쉼을 가졌는데, 왜 우리의 마음은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지쳐 있는 걸까요?생각해 보면 우리는 쉴 때조차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쁜 카페에 가서도 커피 맛을 느끼기보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 남들에게 보여주려 애쓰고, 주말에 멋진 곳으로 여행을 가서도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먼저 신경 씁니다.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 믿었던 행동들조차 알고 보면 남들에게 "나 이렇게 알차고 멋지게 살고 있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노동이 되어버린 것입니다.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상에 집착할수록, 우리의 진짜 내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사회생활을 할 때, 내 진짜 기분과는 상관없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본 적 있으실 겁니다. 속으로는 속상하고 화가 나는데도 관계가 어색해질까 봐 "괜찮아"라고 말하거나, 내 취향도 아닌 일에 남들이 다 좋아한다는 이유로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 말입니다.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거울을 볼 때 문득 씁쓸한 생각이 들곤 합니다.'오늘 내가 한 말과 행동 중에 진짜 내 모습은 얼마나 있었을까?'우리는 남들에게 착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혹은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나도 모르게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사느라 정작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은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 솔직함요즘은 스마트폰 하나만 켜면 남들의 일상을 쉽게 들여다..
스마트폰에 사진이나 글을 올린 뒤,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얼마나 좋아해 주는지 계속 확인해 본 적 있으실 겁니다. 누군가 "좋아요"를 누르거나 칭찬 댓글을 달아주면 기분이 좋아지고 하루 종일 마음이 든든해지지만, 반대로 아무런 반응이 없거나 무관심하면 왠지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처럼 쓸쓸하고 불안해지곤 합니다.우리는 왜 이토록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인정에 목을 매게 되는 걸까요? 타인의 평가가 내 하루 기분을 좌지우지하는 이유와, 그 답답한 감옥에서 걸어 나오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남의 칭찬과 박수소리에 내 존재를 맡길 때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안달하는 것은 본능에 가까울 만큼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에게 칭찬을 받아야 사랑받는다고 느끼고, 어른이 되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