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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오전 업무 중에 자리에서 무심코 거울을 보다가 구석에서 삐죽 튀어나온 흰머리 한 가닥을 발견했습니다. 나이 삼십 줄을 넘어서면서부터 한두 개씩 보이던 게 이제는 제법 자리를 잡은 것 같아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더라고요. 마침 모니터 화면에는 맞춤법도 다 틀리고 문장 부호만 가득한 부장님의 메신저 지시 사항이 팝업으로 떠 있었습니다. "요즘 젊은 애들은 끈기가 없다"라며 매번 회식 자리마다 옛날이야기를 읊어대는 꼰대 상사의 잔소리에 속으로 잔뜩 짜증을 내다가도, 문득 나 역시 새로 들어온 신입 사원들이 조금만 서툴게 행동하면 속으로 혀를 차며 선을 긋고 있었던 모순적인 제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의 쓸쓸함과 나 역시 기성세대의 꼰대 DNA를 닮아가고 있다는 서글픈 현실 자각 타임에 가만히 숨을 고르던 중, 문득 떠오른 작품이 바로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영화 <인턴>이었습니다. 몇 년 전 극장에서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는 그저 패션 대기업을 일군 젊은 여사장과 멋쟁이 노신사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흔하고 달달한 할리우드식 오피스 힐링 드라마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조직 생활의 쓴맛을 제대로 보고 세대 갈등의 장벽 앞에서 매번 멘탈이 바닥을 치는 현실의 직장인이 되어 방구석에 앉아 다시 꺼내 보니, 스크린 속 백발 인턴사원의 주름진 미소와 따뜻한 눈빛이 전혀 다른 결의 묵직한 전율로 제 심장을 사정없이 두드렸습니다.

     

    인턴 광고 포스터
    인턴 광고 포스터

    이거 완전 우리 회사 인사평가 시즌 줄타기 판판 아닌가 싶어 보다가 기가 완전히 빨려버린 감정의 과부하

    영화는 수십 년간 전화번호부 회사의 부사장으로 치열하게 일하다 은퇴한 70세의 노신사 벤(로버트 드 니로 배우)이 30대 젊은 여성 CEO 줄스(앤 해서웨이 배우)가 운영하는 패션 스타트업의 시니어 인턴으로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서사가 시작됩니다.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초고속 디지털 세상과 트렌디한 감성으로 가득 찬 회사 환경은,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벤에게는 바위 앞에 선 계란처럼 낯설고 무모한 도전의 연속이죠.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진짜 피가 거꾸로 솟을 정도로 공감했고 동시에 소름이 돋았던 부분은, 주인공 줄스가 회사가 급성장하면서 밀려드는 업무와 주주들의 외부 압박, 그리고 가정생활의 균형마저 무너지며 지독한 감정의 과부하 상태에 빠져 허우적대는 현실적인 직장 스트레스의 묘사였습니다. "성공해야 한다, 완벽해야 한다"라는 성공을 향한 광기 어린 강박에 짓눌려 주판알을 튕기며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결국 전문 경영인을 영입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떠는 그녀의 모습은 참 안타까우면서도 남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특히 줄스가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홀로 남아 모니터를 보며 눈물을 훔치고, 자신이 일군 회사를 타인에게 넘겨주어야 할지도 모르는 파국의 기로에서 숨이 턱 막히는 무기력증을 드러내는 장면은 참 뒷목을 뻐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킹받는 오피스 내의 암투와 눈치 싸움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거 완전 우리가 매일 출근 전쟁을 치르는 빌딩 숲 속의 현실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 현타가 제대로 왔습니다. 연말 인사평가 시즌만 되면 "여기서 밀려나면 내 커리어는 끝장이다"라는 불안감에 눈이 멀어 주변 동료들을 시기하고 은근히 선을 긋던 우리들의 이기적인 태도들. 영화 속 스타트업의 바쁜 일상은 스크린 속 허구가 아니라, 현대 사회 속에서 영혼을 갈아 넣으며 버텨내는 우리 현대인들의 지독하게 씁쓸한 자화상이었습니다.

    꼰대 부장과 비교되는 진정한 어른의 지혜, 그리고 내 비겁했던 선택들의 흑역사 고백

    회사의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백발의 인턴 벤은 자신의 풍부한 연륜과 노년의 지혜를 내세워 신하들처럼 목에 핏대를 세우며 가르치려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묵묵히 서류 가방을 챙기고 줄스의 곁을 지키며, 그녀가 무너지려 할 때마다 "당신이 이 회사를 만든 사람이고, 당신만큼 이 비즈니스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라며 조용히 상식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일깨워주죠. 모두가 전세를 살피며 발을 뺄 때 홀로 따뜻한 위로의 바리케이드를 쳐주는 그의 고독하면서도 의연한 멘토링은, 가슴이 웅장해지다 못해 찢어지는 듯한 뭉클한 전율을 선물합니다.

    그 당당하고 품격 있는 어른의 발자취를 보는데, 문득 제 과거의 아주 찌질하고 부끄러운 흑역사가 오버랩되어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몇 년 전 직장에서 새로 들어온 서툰 인턴사원이 기성세대의 복잡한 엑셀 프로그램과 보고서 작성 방식을 이해하지 못해 쩔쩔매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요즘 애들은 기본이 안 돼 있다", "바빠 죽겠는데 저걸 언제 가르치고 있냐"라며 비겁하게 핑계를 대고 철저하게 외면하며 비겁한 침묵을 선택했었습니다.

    내 안위와 통장 잔고만 지키느라 후배의 무지함과 상처받은 자존심을 모른 척했던 그날의 이기적인 방관이, 젊은 동료들의 엉망진창 자취방을 청소해 주고 연애 상담까지 해주며 묵묵히 연대하던 벤의 당당함 앞에 사정없이 발가벗겨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영화는 그렇게 거창한 도덕책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현실의 이익과 내 사소한 피곤함 앞에 너무나도 쉽게 약자를 방관하고 도망쳤던 우리들의 뼈를 사정없이 때리다 못해 순살로 만들어 버립니다.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우리가 다시 마주해야 할 내 삶의 진짜 멘토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은 결국 줄스가 전문 경영인 영입이라는 불리한 선택 대신, 자신의 신념을 믿고 끝까지 회사를 지키기로 결심한 뒤 공원에서 조용히 타이치를 하며 마음을 수련하던 벤을 찾아가 활짝 미소를 짓는 마지막 엔딩 장면입니다. 자극적인 반전이나 피비린내 나는 빌런의 처단이 없는 평화로운 해피엔딩이지만, 영화가 남긴 여운은 시간 순삭당하듯 흘러간 상영 시간보다 훨씬 더 길고 묵직하게 감돕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진짜 메시지는 세대 갈등이라는 잔인한 칼날을 거두고, 가짜 권위 뒤에 숨은 위선을 걷어낼 때 비로소 진정한 소통과 연대가 완성된다는 엄중한 사실입니다. 작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 주머니와 내 기준만 안전하게 지키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이기주의의 괴물이 되기 시작할 때, 우리 삶의 소중한 상식과 양심도 서서히 빼앗기게 된다는 경고를 던집니다. 인위적인 요약 기호를 모두 걷어내고 완벽한 스토리텔링 줄글로 인생의 참된 방향타를 따라가니 가슴속 울림이 더 진하게 남는 것 같습니다.

    [내 맘대로 한 줄 평]
    나이와 직급이라는 알량한 선을 그으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짜 어른의 품격과 따뜻한 소통이 무엇인지 사정없이 후려쳐 주는 웰메이드 인생 처방전.

    우리는 내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여전히 피곤에 찌든 얼굴로 스마트폰을 보며 상사의 잔소리를 욕하고, 새로 들어온 후배들의 서툰 행동에 가시 돋친 잔소리를 뱉으며 타협하듯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또다시 나만의 꼰대 DNA를 장착한 채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주 가끔은, 내 인생의 마침표가 언제 찍힐지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 밤만큼은 쑥스럽고 어색하더라도 내 주변의 서툰 이들에게 "괜찮다", "잘하고 있다"라는 정성스러운 응원의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작은 마음의 여유만큼은 품고 살아야겠다는 단단한 다짐을 해봅니다. 여러분은 이 영화를 보면서 벤이 클래식한 손수건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건네던 그 소름 끼치게 따뜻한 명장면에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여러분의 솔직한 관람 후기도 댓글로 남겨주세요. 오늘 밤은 폰 내려놓고 우리들의 씁쓸한 조직 생활과 진짜 어른 얘기로 밤새도록 수다나 제대로 떨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