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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시간 앞에서 인간이 마주하는 본질적 질문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이 영원할 것처럼 살아간다. 눈앞의 메마른 일상과 당장의 욕망에 매몰되어, 생의 종착지가 존재한다는 지극히 명백한 사실을 외면하곤 한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불가피한 명제가 삶의 한복판으로 급작스럽게 침투할 때, 인간은 비로소 ‘어떻게 살아왔는가’라는 서글픈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 <버킷 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은 단순히 두 노인의 시한부 모험담을 다룬 통속적인 감동극이 아니다. 이 작품은 성격과 계급, 살아온 궤적이 전혀 다른 두 인물이 ‘죽음’이라는 공통의 분모를 통해 서로의 삶을 투영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다룬 깊이 있는 인문학적 보고서다.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타자에게 부여된 기대와 사회적 성공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졌을 때, 우리에게 남는 진정한 삶의 유산은 무엇인가.
타인의 욕망을 살았던 자와 자아를 잃어버린 자의 심리학적 대화
극 중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에드워드와 평생을 자동차 정비사로 살아온 카터는 현대 사회가 규정한 두 가지 대표적인 인간 군상을 상징한다. 에드워드는 자본주의적 성공의 극단을 달성했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관계를 모두 타파하고 극단적인 고독 속에 자신을 고립시킨 인물이다. 반면 카터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청춘의 꿈과 지적 열망을 유예한 채,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두 사람이 병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만나 작성하는 ‘버킷 리스트’는 단순한 여락의 목록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억압되어 왔던 본래적 자아를 되찾고자 하는 심리학적 투쟁의 기록이다. 에드워드에게 그 목록은 타인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한 상징적 매개체이며, 카터에게는 잊고 있었던 주체적인 삶의 감각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특히 이들이 피라미드 정상에 앉아 나누는 대화는 이 영화의 핵심적인 대목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죽음 앞에서 받았다는 두 가지 질문, 즉 "삶에서 기쁨을 찾았는가?"와 "타인에게 기쁨을 주었는가?"에 대한 논의는 존재론적 성찰의 결정체다. 자아실현과 타인과의 연결감이라는 두 축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인간의 삶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두 인물의 대비와 교감을 통해 날카롭게 짚어낸다.
죽음이라는 거울을 통해 바라보는 현대인의 삶과 소외
우리가 실존적 불안을 느낄 때 자주 선택하는 회피 방식은 물질적 소유나 끊임없는 바쁨으로 스스로를 마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 계급과 부의 차이는 죽음이라는 절대적 평등 앞에서 무력해진다. 에드워드가 가진 수많은 재산도, 카터가 쌓아온 해박한 지식도 병실의 차가운 정적을 막아주지는 못한다.
작품은 시한부라는 극한의 상황을 통해 도리어 독자들에게 소외된 일상을 회복하라고 권유한다. 화려한 풍경이나 스릴 넘치는 경험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을 누구와 함께 공유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주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카터가 마지막 순간 깨달은 진짜 ‘버킷 리스트’의 완성은 낯선 이국땅에서의 스릴이 아니라, 오랫동안 멀어졌던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용서하는 일이었다.
결국 영화가 제시하는 통찰은 명확하다. 죽음은 삶의 종말을 의미하는 부정적인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가장 강력한 자극제라는 사실이다.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 살아가는 삶, 혹은 타인과의 관계를 끊어낸 채 고립된 삶은 결국 영혼의 빈곤을 초래할 뿐이다.
유한함을 인정하는 태도가 가져다주는 존재의 존엄성
<버킷 리스트>는 거창한 삶의 구원이나 영웅적인 마무리를 선동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유한함을 담담하게 인정할 때, 비로소 삶을 마주하는 태도가 진실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두 주인공이 서로의 삶에 개입하고 영향을 미치며 마침내 도달한 결론은, 눈을 감는 그 순간에 스스로의 삶에 진정으로 nod를 보낼 수 있는 고유한 가치를 찾았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진정한 버킷 리스트는 거대한 체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나가는 이행의 목록이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얽매고 있던 집착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타인을 진심으로 수용하며, 매 순간을 주체적으로 살아내겠다는 결단이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의 삶 곁에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오늘 우리가 맞이하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는 비로소 둘도 없이 눈부신 기적으로 변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