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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저녁, 지독하게 허기가 진 상태에서 배달 앱으로 음식을 주문했습니다. 예정된 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도착하자, 문을 열고 음식을 건네받으며 배달 라이더에게 대놓고 굳은 표정으로 쌀쌀맞게 한마디를 뱉었습니다. 미안하다며 땀을 뻘뻘 흘리고 돌아서는 그의 낡은 오토바이 소리를 들으며 음식을 식탁에 세팅하는데, 거실 거울에 비친 제 심술궂은 얼굴과 마주하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지독한 현타가 밀려왔습니다. 나 역시 직장에서는 온갖 무리한 요구를 다 들어주며 고개를 숙이는 을이면서, 돈 몇 푼 쥐었다고 내 돈 내산이라는 알량한 권력으로 타인에게 갑질 아닌 갑질을 부리고 있었던 찌질한 모순. 익숙하게 선을 지키라고 요구하면서 내 잇속 앞에서는 너무나 쉽게 남의 감정을 짓밟아버리는 제 위선적인 태도 위로 겹쳐 보인 작품이 바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었습니다. 극장에서 처음 이 영화를 접하고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소식에 가슴이 웅장해졌을 때는 그저 계급 갈등을 기발하게 다룬 천재 감독의 블랙코미디 명작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내 안의 비겁한 우월감과 타인을 향한 보이지 않는 선 긋기의 매운맛을 스스로 깨닫고 나서 방구석에 혼자 누워 다시 꺼내 보니, 스크린 속 기택네 가족과 박 사장네의 기이한 공생이 소름 돋을 정도로 날카로운 전율이 되어 제 가슴을 사정없이 후려쳤습니다.

이거 완전 우리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신분 서열 판판 아닌가 싶어 보다가 기가 완전히 빨려버린 계급 사회의 민낯
영화는 반지하에 살며 온 가족이 백수로 지내는 기택(송강호 배우) 일가가 아들 기우(최우식 배우)의 고액 과외 면접을 시작으로 IT 기업의 글로벌 CEO인 박 사장(이선균 배우)의 저택에 위장 취업하며 기생하는 과정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립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진짜 피가 거꾸로 솟을 정도로 씁쓸하고 동시에 소름이 돋았던 부분은, 부유한 박 사장 부부가 대놓고 욕을 하거나 폭력을 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세련된 매너와 다정한 미소 이면에 단단하게 구축된 '선(Line)'이라는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드러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나는 숨길 거 전혀 없다", "사람을 잘 믿는다"라며 교양 있는 척 당당하게 행동하면서도, 운전기사나 가사도우미가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려 하면 단호하게 잘라내고 조작을 일삼아 해고해 버리는 그들의 세련된 잔인함은 참 킹 받으면서도 기가 완전히 빨려 들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박 사장이 거실 소파에 누워 기택에게서 나는 특유의 '반지하 냄새'를 지하철 타는 사람들의 냄새라며 무시하고, "선을 넘는 사람들을 가장 싫어한다"라며 비웃는 장면은 참 뒷목을 뻐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숨 막히는 눈치 싸움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거 완전 우리가 직장 생활이나 사회조직에서 매일 마주하는 보이지 않는 계급 사회의 서글픈 현실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돋았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은밀한 차별, 은근히 출신 대학이나 사는 동네 평수로 사람을 저울질하며 은근히 무시하는 웰메이드 기득권들의 우월 의식들. 영화 속 냄새라는 장치는 허구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매일 출근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의 지독하게 쓸쓸한 자화상이었습니다.
냄새라는 지독한 선을 마주하고 폭주한 인간 본성, 그리고 내 비겁했던 침묵의 순간들
영화 후반부, 폭우로 인해 반지하 집이 통째로 똥물에 잠겨 대피소에서 밤을 지새운 기택이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박 사장 아들의 화려한 가든파티에 동원되어 인디언 모자를 쓰고 연기를 해야 하는 비극의 장면에 이르면 관객들의 심장은 찢어지다 못해 통곡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압도적인 몰입감을 줍니다. 피비린내 나는 파국의 현장 속에서, 쓰러진 빌런 근세의 몸 밑에서 차 키를 꺼내던 박 사장이 코를 킁킁거리며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리는 그 찰나의 행동을 본 순간, 기택은 평생을 버텨온 인간의 존엄성이 부서지는 전율과 함께 이성을 잃고 칼을 쥠으로써 폭주해 버리죠. 연기 구멍 1도 없는 대배우들의 미친 열연 덕분에 시간 순삭당하듯 극의 정점으로 치닫는 이 장면을 보며 차마 화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처절한 폭발 앞에 제 과거의 아주 찌질하고 부끄러운 흑역사가 오버랩되어 얼굴이 화끈거렸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직장에서 한 임원이 계약직 계약 만료를 앞둔 하청업체 직원에게 대놓고 무례한 폭언과 인격 모독에 가까운 무시를 주던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 역시 "내가 나선다고 뭐가 바뀌겠어", "괜히 선 넘어서 밉보였다간 내 밥그릇만 깨진다"라는 비겁한 공포와 내 안위만 챙기느라 철저하게 외면하고 비겁한 침묵을 선택했었습니다.
내 통장 잔고와 안위만 지키느라 타인의 억울한 눈물과 깨져버린 자존심을 모른 척했던 그날의 이기적인 선택들이, 화면 속에서 냄새 때문에 코를 쥐어짜던 박 사장의 모습과 그 앞에 무너져 내리던 기택의 서글픈 눈빛 앞에 사정없이 발가벗겨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영화는 거창한 도덕책을 늘어놓으며 정의롭게 살자고 훈계하는 게 아니라, 현실의 이익과 계급의 장벽 앞에 너무나도 쉽게 타인의 인격을 방관하고 도망치는 우리들의 뼈를 사정없이 때리다 못해 순살로 만들어 버립니다.
다시 반지하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계단,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짜 상식의 무게
이 영화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결국 파국이 끝나고 홀로 박 사장 저택의 지하 비밀 공간에 갇히게 된 아버지를 향해, 아들 기우가 돈을 아주 많이 벌어서 그 집을 통째로 사버리겠다는 허망한 편지를 쓰며 결국 다시 차가운 반지하 방의 현실로 돌아오는 마지막 엔딩 장면입니다.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거나 약자가 기적처럼 구원받는 통쾌한 해피엔딩이 아니기에, 영화가 남긴 여운은 상영 시간 내내 숨이 막힐 만큼 서글프고 무거웠습니다.
작은 불의를 모른 척하고, 내 주머니와 내 선만 안전하게 지키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이기주의의 괴물이 되어 타인을 기생충 취급하기 시작할 때, 우리 사회의 소중한 상식과 양심도 서서히 빼앗기게 된다는 엄중한 경고를 던집니다. 인위적인 요약 기호를 모두 걷어내고 완벽한 스토리텔링 줄글로 자본의 가혹한 궤적을 따라가니 가슴속 울림이 더 진하게 남는 것 같습니다.
[내 맘대로 한 줄 평]
선이라는 잔인한 칼날을 쥔 채 서로를 기생충이라 부르며, 돈 중심의 세상 속에서 영혼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위선과 본성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서늘한 거울.
우리는 내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여전히 피곤에 찌든 얼굴로 스마트폰을 보며 누군가가 풍기는 냄새와 차림새에 은근한 선을 긋고 무기력한 하루를 시작할지 모릅니다. 또다시 배달 음식을 받으며 타인에게 차가운 갑질의 눈빛을 보내며 타협하듯 살아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주 가끔은, 내가 긋고 있는 그 선이 누군가의 가슴을 사정없이 찢어놓는 칼날이 될 수 있다는 엄중한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 밤만큼은 내 안의 찌질한 우월감을 내려놓고 사람에 대한 따뜻한 예의를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마음의 여유만큼은 품고 살아야겠다는 단단한 다짐을 해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 영화를 보면서 박 사장이 차 안에서 슬쩍 선을 넘는 기택의 사투리에 표정을 굳히던 그 소름 끼치는 명장면에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여러분의 솔직한 관람 후기도 댓글로 남겨주세요. 오늘 밤은 폰 내려놓고 우리들의 씁쓸한 계급과 본성 얘기로 밤새도록 수다나 제대로 떨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