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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없이 바쁜 아침 출근길, 만원 지하철 안에서 밀려오는 사람들에게 치이며 무심코 스마트폰의 캘린더 앱을 열었다가 화면 상단에 뜬 작은 알림 하나에 뇌리가 띵해졌습니다. 며칠 뒤로 다가온 가족의 생일이었죠. 매일 쫓기듯 처리해야 하는 업무 생각과 피곤함에 가려져, 늘 곁에 있는 게 당연하다는 이유로 "이번엔 그냥 대충 주말에 밥 한 끼 먹고 때우지 뭐"라며 무심히 넘기려 했던 제 서글픈 감정이 고스란히 들어왔습니다. 내가 언제부터 가장 소중한 사람들의 시간과 마음을 이렇게 귀찮은 숙제처럼 대하며 살았던 걸까 하는 깊은 회한이 밀려오더군요. 곁에 머무는 이들의 온기를 무색하게 만들 만큼 일상에 찌들어 있던 참에, 머릿속을 강렬하게 스치고 지나간 작품이 바로 최국희 감독의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였습니다. 처음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극장에서 볼 때는 그저 신나는 대중가요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는 유쾌한 음악 영화이자, 후반부에 눈물을 짜내는 흔한 신파극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 속에서 소중한 사람의 존재 가치를 망각한 채 살아가는 현실의 잔인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나서 다시 꺼내 보니, 스크린 속 인물들이 내뱉는 노랫말 한 소절과 서툰 몸짓 하나가 완전히 다른 무게로 제 심장을 사정없이 두드렸습니다.


    마지막 순간의 사랑, 그리고 우리들의 서툰 소통이 만들어낸 자화상

    영화는 자신에게 남은 생의 시간이 얼마 없다는 갑작스러운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 아내 오세연(염정아 배우)과, 마음과 달리 늘 퉁명스럽고 무뚝뚝한 말로 상처를 주는 남편 강진봉(류승룡 배우)의 이야기로 큰 축을 이룹니다. 세연은 삶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기 전, 진짜 마지막 순간의 사랑을 되찾고 나를 온전히 발견하기 위해 남편에게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풋풋했던 첫사랑을 찾아달라는 황당하면서도 절박한 제안을 던집니다.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아내의 마지막 소원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며 옛 흔적을 쫓아가는 진봉의 여정은, 신나는 댄스 안무 뒤에 가려진 서글픈 이별의 그림자를 더욱 짙고 아프게 드리웁니다.

    사실 영화 속 세연과 진봉의 대화는 오늘날 현대인들이 겪는 지독한 불통의 현실과 소름 돋을 정도로 똑 닮아 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깊이 아끼고 미안해하면서도, 정작 입 밖으로는 뾰족하고 거친 잔소리와 짜증만 내뱉는 남편 진봉의 모습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일상입니다. 저 역시 하루 종일 밖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집에 돌아와 가장 편하게 안식처가 되어주어야 할 소중한 사람에게 "피곤하니까 나중에 얘기해"라며 매정하게 문을 닫아걸었던 수많은 밤이 오버랩되어 영화를 보는 내내 입안이 씁쓸해졌습니다. 단순한 눈물샘 자극을 넘어 늘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존재가 내 삶의 궤적에서 서서히 소멸해 갈 때 찾아오는 지독한 허전함은, 독자들에게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라고 무겁게 경고합니다.


    찬란한 인생과 이별을 준비하는 자세, 내 부끄러운 미룸의 순간들

    영화 후반부, 자신의 생이 다해가고 있음을 직시한 세연이 슬픔에 잠겨 울부짖는 대신 지인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자신의 마지막 잔치이자 장례식을 축제처럼 스스로 치러내는 장면에 도달하면 관객들의 가슴은 미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별을 준비하는 자세가 이토록 의연하고 찬란할 수 있다는 사실은, 거창하고 무거운 비극을 늘어놓는 법정 드라마보다 훨씬 더 큰 돌덩이가 되어 제 가슴을 사정없이 후려쳤습니다. 과연 나는 내 인생의 마지막 커튼콜이 내려오는 순간에 저렇게 내 삶을 눈부셨다고 자부하며 웃으며 안녕을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자문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제 개인적인 아주 부끄러운 기억 하나가 떠올라 마음이 시렸습니다. 몇 년 전, 부모님이 뜬금없이 스마트폰 메신저로 기호와 오타가 가득한 서툰 글씨로 '보고 싶다'는 짧은 문자 한 통을 보내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번 주말엔 피곤해서 쉬어야 하니까 다음 주에 전화드려야지라며 무심히 미루고 방관했었습니다. 나중에 한참이 지나서야 부모님이 그날 유독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셨음을 알게 되었을 때, 밀려오는 죄책감과 후회로 혼자 방 안에서 한참을 먹먹해했던 적이 있습니다. 영원히 내 곁을 지켜줄 것 같은 이들과의 이별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데, 나는 도대체 왜 고작 사소한 일상의 안락함을 핑계로 소중한 마음들을 매번 내일로 연기하며 살아온 걸까 싶더라고요. 영화는 그렇게 남은 시간이 무한할 것처럼 오만하게 굴다가 소중한 이를 잃고 나서야 오열하는 우리들의 나약한 인간 본성을 눈물겹게 꾸짖습니다.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우리가 지금 안아주어야 할 눈부신 이름

    영화는 억지로 즙을 짜내는 신파의 문법을 따르지 않고, 세연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아름다운 음악들과 남은 이들이 서로의 손을 따뜻하게 맞잡는 모습을 통해 뭉클한 여운을 남기며 끝이 납니다.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현실의 벽을 깨뜨릴 수는 없었지만, 우리가 치열하게 살아낸 하루하루의 모든 순간이 이미 충분히 찬란한 인생이었다는 위로의 메시지는 차가운 현실에 체해버린 우리 현대인들에게 너무나 정성스러운 연고를 발라줍니다. 인위적인 요약 기호를 모두 지워버리고 완전한 스토리텔링 줄글로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니 가슴속 울림이 더 길고 진하게 남는 것 같습니다.

    [내 맘대로 한 줄 평]
    유한한 삶이라는 슬픈 거울을 통해, 영혼 없이 모니터만 쫓아가는 우리들에게 지금 내 곁의 사람을 온 힘을 다해 사랑하라고 재촉하는 눈부신 주크박스.

    우리는 내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여전히 피곤에 찌든 얼굴로 스마트폰의 캘린더 알림을 무심히 넘기며 영혼 없는 하루를 시작할지 모릅니다. 또다시 소중한 사람에게 사소한 일로 날카로운 가시 돋친 말을 뱉으며 타협하듯 살아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주 가끔은, 내 인생의 마지막 잔치가 언제 열릴지 모른다는 엄중한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 밤만큼은 쑥스럽고 어색하더라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꼭 잡은 채 "고맙다", "미안하다"라는 따뜻한 진심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작은 여유를 품고 살아야겠다는 단단한 다짐을 해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 영화를 보며 세연과 진봉의 뜨거웠던 이별 앞에 저처럼 가슴 시리도록 부끄러워졌던 기억이 있으셨나요? 아니면 오늘 밤 당장 소중한 이의 이름을 부르며 따뜻한 밥 한 끼라도 같이 먹고 싶어 지셨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솔직한 관람평이나 평소 가족에게 말하지 못했던 소소한 미안함 썰이라도 좋으니 마음껏 털어놓아 주세요. 오늘 밤은 우리들의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인생 이야기로 밤새도록 따뜻하게 수다나 떨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