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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들어 부쩍 통장 잔고나 날마다 날아오는 카드 명세서 영수증을 빤히 들여다보며 한숨 쉬는 날이 늘었습니다. 내 한 몸 건사하고 매달 고정비 쳐내기도 숨이 턱턱 막히는 팍팍한 세상이죠. "그래도 난 내 밥그릇 하나는 지키며 사니까 당당하다"라며 겉으로는 쿨한 척 다 하지만, 정작 현실은 돈 몇 푼에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찌질한 직장인일 뿐입니다. 내 삶이 유독 무겁고 서글프게 느껴지던 날 밤, 무심코 노트북을 켜서 예전에 극장에서 가볍게 팝콘 먹으며 봤던 윤제균 감독의 영화 <국제시장>을 다시 재생했습니다.

    그때는 그저 연기 구멍 1도 없는 대배우들이 나와서 눈물샘을 자극하는 흔한 한국형 흥행 신파극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매일 출근 전쟁을 치르고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족쇄를 발목에 찬 상태에서 방구석에 앉아 혼자 조용히 다시 꺼내 보니, 스크린 속 백발노인의 주름진 얼굴과 눈물이 완전히 다른 결의 묵직한 전율로 제 심장을 사정없이 후려쳤습니다. 세련된 연출 속에 숨겨진 진짜 우리 아버지들의 고독한 탐욕과 희생, 그리고 대한민국 현대사라는 잔인한 거울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씁쓸한 현타에 대해 날 것 그대로의 솔직한 감정들을 조금 털어놓아 볼까 합니다.

     

    국제시장 광고 포스터
    국제시장 광고 포스터

    이거 완전 내 눈앞의 생존 경쟁 판판 아닌가 싶어 보다가 기가 완전히 빨려버린 현대사의 비극

    영화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 작전의 아비규환 속에서 동생 막순이와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졸지에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버린 소년 덕수(황정민 배우)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며 본격적인 서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립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진짜 피가 거꾸로 솟을 정도로 킹받고 동시에 소름이 돋았던 부분은, 주인공 덕수가 오직 가족의 생계와 동생들의 학비라는 번지르르한 핑계를 짊어지고 독일의 어두운 탄광 갱도 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총알이 빗발치는 베트남 전쟁터까지 제 발로 걸어 들어가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어야 했던 가혹한 생존의 법칙이었습니다.

    특히 덕수가 평생을 바쳐 일궈온 부산 국제시장의 '꽃분이네' 가게를 지키기 위해 주변의 개발 압박이나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악착같이 버티며 고집을 부리는 장면은 참 뒷목을 뻐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숨 막히는 고집과 눈치 싸움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거 완전 우리가 매일 출근 전쟁을 치르는 빌딩 숲 속의 현실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 현타가 제대로 왔습니다. 내 통장 잔고와 내 가족의 울타리만 안전하게 지키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주변에서 무슨 일이 터지든 눈을 감고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영혼을 갈아 넣는 우리 현대인들의 처절한 생존 경쟁이 영화 속 덕수의 고단한 발걸음과 소름 돋을 정도로 오버랩되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현대사의 아픔은 시나리오 속 허구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가면을 쓰고 버텨내는 우리들의 지독하게 쓸쓸한 자화상이었습니다.

    "이만하면 나 잘 살았지예"라는 눈물 섞인 고백, 그리고 내 비겁했던 선택들의 흑역사

    영화 후반부, 수많은 풍파를 겪고 백발이 된 덕수가 홀로 방에 들어가 아버지의 빛바랜 사진을 붙잡고 "아버지, 저 이만하면 자식들 잘 키우고 잘 살았지예. 근데 진짜 힘들었거든예"라며 어린아이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하는 명장면에 도달하면 관객들의 가슴은 가슴이 웅장해지다 못해 찢어지는 듯한 서글픈 통곡이 터져 나옵니다. 평생을 기회주의자들의 줄타기 속에서 내 안위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의 처절한 외로움을 보는데, 제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파 오면서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당한 책임감 앞에 제 과거의 아주 찌질하고 부끄러운 흑역사가 오버랩되어 얼굴이 화끈거렸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직장에서 윗선들의 명백한 이권 다툼과 편법으로 인해 한 동료가 억울하게 독박을 쓰고 밀려나던 파국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 역시 "내가 나선다고 뭐가 바뀌겠어", "우선 내 밥줄부터 지키고 봐야지"라는 비겁한 공포와 사소한 이익을 핑계 삼아 철저하게 외면하고 비겁한 침묵을 선택했었습니다.

    내 밥그릇과 주머니 채우는 일에만 눈이 멀어 타인의 눈물을 모른 척했던 그날의 이기적인 선택들이, 오직 가족을 위해 온몸이 부서져라 헌신했던 덕수의 서글픈 눈빛 앞에 사정없이 발가벗겨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영화는 거창한 도덕책을 늘어놓으며 착하게 살자고 훈계하는 게 아니라, 현실의 이익과 내 안위 앞에 너무나도 쉽게 약자를 방관하고 도망쳤던 우리들의 뼈를 사정없이 때리다 못해 순살로 만들어 버립니다.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우리들의 가슴속에 남겨진 진짜 마침표의 의미

    이 영화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하하 호호 웃으며 행복한 파티를 즐기는 동안, 그 평화의 무대에 끼지 못하고 홀로 골방에 앉아 식어버린 눈물을 훔치는 늙은 가장의 소외된 뒷모습을 보여주는 마지막 엔딩 장면입니다. 정의가 무조건 승리하거나 영웅이 세상을 구원하는 흔한 통쾌한 팝콘 영화의 결말이 아니기에, 영화가 남긴 여운은 시간 순삭당하듯 흘러간 상영 시간보다 훨씬 더 길고 무겁게 감돕니다.

    작은 불의를 모른 척하고, 내 주머니와 내 기준만 안전하게 지키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이기주의의 괴물이 되어 타인을 방관하기 시작할 때, 우리 사회의 소중한 상식과 양심도 서서히 빼앗기게 된다는 경고를 던집니다. 인위적인 요약 기호를 모두 걷어내고 완벽한 스토리텔링 줄글로 한 인간의 가혹한 인생 궤적을 따라가니 가슴속 전율이 훨씬 진하게 남는 것 같습니다.

    [내 맘대로 한 줄 평]
    아버지라는 무거운 가면을 쓴 채 시대의 불합리에 온몸으로 부딪쳐 간 기성세대의 눈물을 통해, 오늘날 핑계 뒤에 숨어 영혼 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기주의를 사정없이 후려치는 서늘한 거울.

    우리는 내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여전히 피곤에 찌든 얼굴로 스마트폰만 바라보며 무기력하고 팍팍한 하루를 시작할지 모릅니다. 또다시 집으로 돌아와 내 주머니 채우는 일에 골몰하며 나 자신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주 가끔은, 내가 쥐고 있는 이 작은 영수증 한 장과 평화가 앞선 세대의 지독한 희생 위에 간신히 세워진 상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 밤만큼은 쑥스럽고 어색하더라도 부모님께 전화 한 통 걸어 따뜻한 진심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작은 마음의 여유만큼은 품고 살아야겠다는 단단한 다짐을 해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 영화를 보면서 이산가족 찾기 광장에서 덕수가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피꺼솟 하듯 오열하던 그 소름 끼치는 명장면에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여러분의 솔직한 관람 후기도 댓글로 남겨주세요. 오늘 밤은 차가운 폰 내려놓고 우리들의 서툰 가족 얘기와 진짜 인생 이야기로 밤새도록 수다나 제대로 떨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