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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침 화장실 불을 켜고 세수를 하려다가 거울 속 내 모습에서 유난히 하얗게 반짝이는 새치 한 가닥을 발견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아무 생각 없이 툭 뽑아 버렸을 텐데, 그날따라 손끝에 걸린 흰머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묘하게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서늘해지더라고요. 내가 벌써 이렇게 나이를 먹고 늙어가고 있구나, 내 청춘과 시간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 버린 걸까 하는 허무함이 밀려왔습니다. 매일 아침 좀비처럼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회사로 출근해 영혼 없이 모니터를 보며 하루를 갈아 넣는 삶. 언제 올지도 모르는 막연한 미래의 여유를 위해 정작 오늘이라는 소중한 현재를 철저히 저당 잡힌 채 살아가는 제 나약한 모습이 그 하얀 머리카락 위로 무겁게 겹쳐 보였습니다. 스스로의 인생에 서글픈 쉼표를 던지고 싶던 참에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작품이 바로 롭 라이너 감독의 영화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이었습니다. 20대의 아주 젊고 철없던 시절에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는 그저 돈 많은 할아버지와 유식한 정비공 할아버지가 티격태격하며 세계 일주를 다니는 배부르고 유쾌한 할리우드식 드라마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리다 정작 나 자신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인생의 지독한 고독을 제대로 맛본 상태에서 혼자 다시 꺼내 보니, 스크린 속 두 주인공의 주름진 얼굴과 눈빛이 전혀 다른 결의 묵직한 떨림으로 제 심장을 매섭게 두드렸습니다.

     

    &lt;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gt; 광고 포스터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죽음 앞에서의 선택이라는 가혹한 질문, 그리고 시한부 병동에서 마주한 두 노인의 서스펜스

    영화는 평생을 오직 돈과 성공만을 쫓아 거대한 병원 대기업을 일구었지만 정작 주변에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사람 하나 남지 않은 고독한 억만장자 에드워드(잭 닉슨 배우)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마흔 해 동안 카센터 정비공으로 일하며 자신의 꿈을 까맣게 접어두었던 카터(모건 프리먼 배우)의 기묘한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전혀 다른 극과 극의 삶을 살던 두 노인은 같은 병실에서 동시에 시한부 선고를 받는 잔인한 운명 앞에 마주 서게 되죠. 이들이 남은 몇 달의 짧은 시간 동안 죽음 앞에서의 선택으로 그간 묻어두었던 꿈의 목록을 작성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병원 문을 박차고 나가는 여정 속에서, 영화는 유쾌한 웃음 뒤에 가려진 삶의 유한함이라는 서글픈 그림자를 조용히 드리웁니다.

    사실 영화 속 두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현대인들이 마음속 깊이 품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두려움과 정면으로 맞닿아 있습니다. 엄청난 부를 쥐었으나 영혼은 황량하기 짝이 없는 에드워드나, 가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느라 자신의 청춘을 통째로 분실해 버린 카터의 자화상은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과 소름 돋을 정도로 똑같습니다. 저 역시 나중에 성공하고 나면, 나중에 통장 잔고가 넉넉해지고 나면 그때 행복해질 거라는 가짜 위안을 방패 삼아 오늘 찾아온 소소한 기쁨들을 무수히 외면하고 살았던 수많은 날이 오버랩되어 영화를 보는 내내 씁쓸한 침이 삼켜졌습니다. 단순한 여행의 대리 만족을 넘어 진짜 인생의 종착지가 눈앞에 닥쳤을 때 찾아오는 지독한 허무함은 독자들에게 지금 당장 올바른 선택을 하라고 조언합니다.

    내일로 미루기만 하던 내 서툰 홀로서기 폭로, 그리고 피라미드 앞에서 짓눌린 뼈아픈 후회

    영화 후반부, 두 노인이 만리장성을 바이크로 달리고 피라미드 앞에서 인생의 깊은 대화를 나누며 하나씩 목록을 지워나갈 때 스크린을 채우는 잔잔한 여운은 관객들의 심장을 사정없이 후려칩니다. 특히 화려한 세계 여행을 끝내고 결국 자신이 가장 두려워했던 단절된 가족과의 화해로 돌아와 인생의 마침표를 준비하는 에드워드의 변화는, 핏대를 세우며 거창한 철학을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돌덩이가 되어 제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과연 나는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도달했을 때 이들처럼 부끄러움 없이 평온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제 개인적인 부끄러운 기억 하나가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 정말 가슴 뛰게 해보고 싶었던 오랜 꿈이 있어 야심 차게 관련 서적을 사고 학원까지 알아봤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실천하려니 당장 피곤하니까 주말엔 쉬어야지, 지금 당장 먹고사는 데 급한 일도 아닌데 나중에 안정되면 하지 뭐라며 비겁하게 핑계를 대고 내 꿈을 방관했었습니다. 결국 그 열정은 흔적도 없이 흐지부지 사라졌고, 나중에야 그때의 비겁한 미룸이 얼마나 내 삶의 생기를 갉아먹는 행동이었는지 깨닫고 깊이 후회했었죠. 진정으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선택은 언제나 용기를 필요로 하는데, 나는 왜 늘 사소한 현실의 안락함과 타협하며 가짜 다짐만 남발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영화는 그렇게 진짜 삶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매번 내일로 미루기만 하던 내 서툰 홀로서기를 사정없이 폭로하며 우리들의 나약한 인간 본성을 매섭게 다그칩니다.

    진정한 행복으로 완성한 생의 마침표, 우리가 지금 당장 채워야 할 나만의 뜨거운 목록

    영화는 억지 눈물을 짜내는 신파극이 아니라, 히말라야 설산의 높은 봉우리 위에 두 노인의 유골함이 나란히 안치되는 모습을 통해 담담하고도 아름답게 마무리가 됩니다. 비록 죽음이라는 인간의 절대적인 한계와 현실의 장벽은 막을 수 없었지만, 그 속에서 찾아낸 진정한 행복의 의미는 차가운 현실에 체해버린 우리들에게 따뜻한 처방전 같은 위로와 용기를 건넵니다. 연기 구멍 1도 없는 명배우들의 열연 덕분에 2시간 동안 완전히 시간 순삭당하고 기가 완전히 빨려 나온 인생 영화였습니다. 인위적인 요약 기호를 모두 걷어내고 완벽한 스토리텔링형 줄글로 이들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가니 가슴속 울림이 더 길고 진하게 남는 것 같습니다.

    [내 맘대로 한 줄 평]
    시한부라는 잔인한 거울을 통해, 영혼 없이 시계바늘만 쫓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짜 살아있음을 느끼는 선택을 하라고 재촉하는 명작.

    우리는 내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여전히 피곤에 찌든 얼굴로 스마트폰만 바라보며 무기력한 하루를 시작할지 모릅니다. 또다시 나만의 꿈은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둔 채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주 가끔은, 내 인생의 마침표가 언제 찍힐지 모른다는 엄중한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 밤만큼은 거울 속 늘어난 흰머리를 보며 한탄만 할 게 아니라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조용히 되짚어볼 수 있는 작은 마음의 여유를 품고 살아야겠다는 단단한 다짐을 해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 영화를 보며 두 노인의 무모하지만 찬란했던 도전 앞에 저처럼 부끄러워졌던 기억이 있으셨나요? 아니면 오늘 밤 당장 미뤄두었던 나만의 진짜 행복을 향해 아주 작은 걸음이라도 내딛고 싶어 지셨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솔직한 관람 후기나 가슴속에만 묻어두었던 인생의 버킷리스트 썰이라도 좋으니 마음껏 털어놓아 주세요. 오늘 밤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마침표를 위한 이야기로 밤새도록 뜨겁게 수다나 떨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