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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 주위 사람들 앞에서는 세상 당당하고 떳떳한 척은 다 하며 살아갑니다. "나는 살면서 양심에 거리릴 만한 짓은 해본 적도 없고, 숨길 것도 1도 없다"라며 농담 섞인 큰소리를 쳐대기도 하죠. 하지만 정작 누군가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스마트폰의 카카오톡 대화방 알림 진동이 울리면,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몸을 살짝 돌려 방어벽을 치거나 액정 화면이 보이지 않게 바닥으로 폰을 휙 뒤집어놓기 바쁩니다. 내 은밀한 프라이버시가 담긴 블랙박스를 곁에 있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훔쳐볼까 봐 매번 전전긍긍하는 게, 지극히 평범한 우리 현대인들의 모순적인 자화상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남들의 시선과 내 안의 이중성에 갇혀 묘한 회의감이 들던 날, 아무 생각 없이 넷플릭스를 켜서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한 작품이 바로 이재규 감독의 영화 <완벽한 타인>이었습니다. 예전에 극장에서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는 그저 연기 구멍 1도 없는 대배우들이 나와서 파국으로 치닫는 소동극을 펼치는 흔한 블랙코미디 오락 영화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인간관계의 쓴맛을 보고 스마트폰 하나에 내 영혼이 통째로 저당 잡혀 산다는 현실의 공포를 제대로 깨달은 상태에서 방구석 혼자 다시 마주하니, 식탁 위에 올려진 스마트폰들이 진동을 울릴 때마다 느껴지는 음산한 분위기와 서스펜스가 소름 돋을 정도로 날카로운 전율이 되어 제 가슴을 사정없이 후려쳤습니다.

     

    완벽한 타인 광고 포스터
    완벽한 타인 광고 포스터

    이거 완전 부부 동반 모임 식탁 꼴 아닌가 싶어 보다가 기가 완전히 빨려버린 인간관계의 서글픈 암투

    영화는 오랜 고향 친구들과 그들의 아내들이 한자리에 모여 집들이 연회를 즐기는 평범하고 화기애애한 저녁 식사 자리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와인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웃고 떠들던 평화도 잠시, 누군가의 뜬금없는 제안으로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걸려오는 모든 전화, 문자, 이메일을 강제로 실시간 공유하는 일명 '핸드폰 잠금해제 게임'이 시작되면서 극의 온도는 차갑게 식어버립니다. "나는 켕길 게 전혀 없다"라며 큰소리치던 이들이 폰을 식탁 위에 올려놓는 순간부터, 영화는 숨이 턱 막힐 듯한 서스펜스로 돌변하며 관객들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고 갑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진짜 피가 거꾸로 솟을 정도로 씁쓸하고 동시에 소름이 돋았던 부분은, 강제로 열려버린 판도라의 상자 속에서 수십 년 지기 친구들의 상상 초월하는 외도, 사기, 말 못 할 성 정체성, 그리고 서로를 향해 뱉어내던 추악한 뒷담화의 실체가 줄줄이 터져 나오는 과정이었습니다. 가장 친밀하다는 부부 사이나 피를 나눈 것 같은 친구라고 믿으면서도, 정작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안에는 타인에게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은 불륜과 위선이 가득 담겨 있다는 민낯을 목격하는 것 자체가 진짜 기가 완전히 빨려 들게 만들었습니다.

    스마트폰은 더 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한 인간의 영혼을 그대로 복사해 둔 블랙박스와 다름없습니다. "우리 사이엔 비밀이 없다"라고 다정하게 말하면서도 카카오톡 대화창이나 통화 내역은 결코 보여주지 않는 것을 상식으로 여기는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 영화 속 인물들이 폰 진동 소리 하나에 눈동자를 굴리며 전전긍긍하는 킹받는 눈치 싸움은 시나리오 속 허구가 아니라, 겉으로는 완벽하게 행복한 척 포장하며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의 지독하게 쓸쓸한 자화상이었습니다.

    솔직함이 정말 관계의 답일까, 내 비겁했던 카톡 훔쳐보기 흑역사의 고백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꽁꽁 숨겨두었던 추악한 진실들이 백일하에 폭로되면서 인물들은 완전히 파국으로 치닫고, 서로 뺨을 때리고 오열하며 식사 자리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됩니다. 거대한 진실 앞에 마주 선 이들의 처참한 붕괴를 보는데, 웅장한 사회 정의를 외치던 법정 드라마를 볼 때와는 전혀 다른 결의 묵직한 돌덩이가 제 가슴을 사정없이 후려쳤습니다. 과연 모든 것을 가감 없이 다 드러내는 솔직함만이 인간관계의 유일한 정답일까 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동시에 제 과거의 아주 찌질하고 부끄러운 흑역사 하나가 오버랩되어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 정말 가족만큼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제삼자에게 저에 대한 서운함과 험담을 털어놓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우연히 몰래 훔쳐보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저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던 친구의 굳이 알 필요 없었던 진짜 속마음을 마주한 순간, 제 안의 방어벽도 무너져 내렸고 그 친구와의 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어 결국 지금까지도 서먹한 사이로 남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그날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지 못했더라면, 혹은 모른 척 눈감고 덮어두었더라면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깨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와 혼자 방 안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모든 진실을 낱낱이 들추어내고 발가벗기는 것이 때로는 관계를 완벽하게 파괴하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씁쓸한 사실을, 영화 속 무너져 내리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아주 뼈저리게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그렇게 도덕책 같은 훈계를 늘어놓는 게 아니라, 현실의 이익과 내 찌질함 뒤에 숨어 위선적인 방관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뼈를 때리다 못해 순살로 만들어 버립니다.

    월식의 밤이 지나고 식어버린 일상으로 돌아오며 마주한 세 가지 진짜 인생

    이 영화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지독한 파국이 끝난 뒤, 반전처럼 '만약 그날 밤 그들이 핸드폰 공유 게임을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평화롭고 고요한 평행세계의 진짜 결말을 보여주는 마지막 엔딩 장면입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각자의 더러운 비밀과 외도를 철저하게 숨긴 채, 세상 다정한 부부인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손을 잡고 집을 나서는 인물들의 뒷모습은 해피엔딩이라기보다는 소름 끼치는 호러 영화에 가깝게 다가옵니다.

    인간은 누구나 공적인 삶, 개인적인 삶, 그리고 소중한 이들에게조차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의 삶'이라는 세 가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메시지는 차가운 현실에 체해버린 우리들에게 묵직하고 서늘한 여운을 남깁니다. 인위적인 요약 기호를 모두 걷어내고 완벽한 스토리텔링 줄글로 자본과 디지털이 만들어낸 가혹한 인간 본성을 따라가니 가슴속 울림이 훨씬 진하게 남는 것 같습니다.

    [내 맘대로 한 줄 평]
    가장 신뢰한다고 믿었던 사람을 순식간에 완벽한 타인으로 만들어버리는, 내 손바닥 위 스마트폰 속에 숨겨진 잔인하고 추악한 거울.

    우리는 내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여전히 피곤에 찌든 얼굴로 스마트폰을 쥐고 다정한 미소를 짓는 가면을 쓴 채, 한 손으로는 누군가 볼까 봐 폰 화면을 힐끔 슬쩍 숨기며 무기력한 하루를 시작할지 모릅니다. 때로는 진실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옛말이,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슬픈 방패이자 윤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서글픈 다짐을 해보게 되네요.

    여러분은 만약 연인이나 연인, 혹은 배우자가 식탁 위에서 이 '핸드폰 모든 내용 공유 게임'을 제안한다면 당당하게 비밀번호를 풀고 스마트폰을 올려놓으실 수 있나요? 아니면 어떤 핑계를 대고 도망치실 건가요? 댓글로 여러분의 솔직한 관람 후기나 요요현상 가득한 인간관계 비밀 썰이라도 좋으니 마음껏 털어놓아 주세요. 오늘 밤은 폰 내려놓고 아슬아슬한 우리들의 비밀 얘기로 밤새도록 수다나 제대로 떨어봅시다.